2023년04월15일 16번
[과목 구분 없음] 밑줄 그은 '이 시기'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? [2점]

- ① 매를 조련시키는 응방 관리
- ② 원에 공녀로 끌려가는 여인
- ③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우는 목공
- ④ 권문세족에게 땅을 빼앗기는 농민
(정답률: 52%)
문제 해설
정답> ③
'복식으로 배우는 한국사'라는 제목 아래 '왼쪽 그림(이조년 초상)에서는 발립을 쓴 관리의 모습, 오른쪽 그림[천산대렵도(일부)]에서는 변발과 호복을 한 무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. 이러한 복식은 이 시기 지배층 사이에서 유행하였습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를 통해 밑줄 그은 시기는 고려 시대의 원 간섭기*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. 이조년(1269~1343)은 고려의 문신이며 천산대렵도는 고려 공민왕(재위 1351-1374, 제31대)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수렵도이다.
*원 간섭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원종의 환도령으로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(원종 11)부터 시작되어(개경 환도),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'성공'한 1356년(공민왕 5)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.
신라의 대국통, 자장(590~658)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된 것은 선덕 여왕 15년인 646년의 일이다(건의한 것은 선덕 여왕 12년인 643년).
오답 해설>
① 매(해동청)를 조련시키는 응방(鷹坊)에 대한 기록은 충렬왕 원년인 1275년에 처음으로 보인다. 몽골에서 매를 보내라는 요구가 잦자 충렬왕 9년인 1283년에는 응방을 관장하는 응방도감을 두기도 하였다.
② 공녀(貢女)를 보내기 위해 결혼도감을 설치한 것은 고려 원종 15년인 1274년의 일로, 그 대상 국가는 원(나라)이다(원 간섭기).
④ 권문세족은 무신 정변 이후 원을 배경으로 하여 새로 형성된 지배층이다. 권문세가라고도 하였는데, 기존 문벌 귀족 중 일부와 무신 정권기에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일부 무신, 지방 출신으로 새로이 과거를 통해 등장한 신진 관인, 그리고 원과의 관계에서 출세한 부원(附元) 세력 등으로 구성되었다. 원 간섭기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였다.
'복식으로 배우는 한국사'라는 제목 아래 '왼쪽 그림(이조년 초상)에서는 발립을 쓴 관리의 모습, 오른쪽 그림[천산대렵도(일부)]에서는 변발과 호복을 한 무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. 이러한 복식은 이 시기 지배층 사이에서 유행하였습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를 통해 밑줄 그은 시기는 고려 시대의 원 간섭기*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. 이조년(1269~1343)은 고려의 문신이며 천산대렵도는 고려 공민왕(재위 1351-1374, 제31대)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수렵도이다.
*원 간섭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원종의 환도령으로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(원종 11)부터 시작되어(개경 환도),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'성공'한 1356년(공민왕 5)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.
신라의 대국통, 자장(590~658)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된 것은 선덕 여왕 15년인 646년의 일이다(건의한 것은 선덕 여왕 12년인 643년).
오답 해설>
① 매(해동청)를 조련시키는 응방(鷹坊)에 대한 기록은 충렬왕 원년인 1275년에 처음으로 보인다. 몽골에서 매를 보내라는 요구가 잦자 충렬왕 9년인 1283년에는 응방을 관장하는 응방도감을 두기도 하였다.
② 공녀(貢女)를 보내기 위해 결혼도감을 설치한 것은 고려 원종 15년인 1274년의 일로, 그 대상 국가는 원(나라)이다(원 간섭기).
④ 권문세족은 무신 정변 이후 원을 배경으로 하여 새로 형성된 지배층이다. 권문세가라고도 하였는데, 기존 문벌 귀족 중 일부와 무신 정권기에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일부 무신, 지방 출신으로 새로이 과거를 통해 등장한 신진 관인, 그리고 원과의 관계에서 출세한 부원(附元) 세력 등으로 구성되었다. 원 간섭기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였다.